넌 말이 없었었지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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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모건

춤추는 기린 2018. 4. 11. 13:40

장사가 잘 되지 않던 시절의 모건이 그립다.

 

모건은 동성로 로데오거리에서도 가장 가장자리에 있어 클럽과 룸 소주 방이 즐비한 거리에서 좀 더 걸어야 나온다. 한산하고 담배꽁초가 많이 버려진 곳을 지나 오른쪽으로 턴을 하면 신발 고치는 수선집이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그제서야 간판이 보인다. 장사를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입간판도 없어서 평일엔 손님이 없다. 문도 제멋대로 열었다 닫았다 했다. 그땐 그런 술집이 많았다. 계대 돌계단으로 옮긴 직후의 헤비가 그랬고 쟁이, 오르간, 꼬뮨도 그랬다. 가는 손님은 항상 똑같고 손님인가 하면 어느새 알바가 되있고 그런 식이었다. 주로 20대 초반의 인디 음악과 영화를 하는 친구들이 여길 돌아가며 술을 마셨다. 

 

10년전 그 당시에 모건은 2명 또는 4명 짝을 맞춰 오지 않으면 음료를 제공하지 않는 이상한 곳이었다. 장소가 너무 협소해서 테이블이 세개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유일하게 수제맥주를 파는 곳이라 인기가 많아서 기회가 닿으면 어떻게든 짝을 맞춰 친구들과 거길 갔다. 그러다가 언젠가 전기 합선으로 불이나 장소가 홀라당 타버리고 아예 장소를 이전해서 거기는 아무도 입주를 안하는가 했더니 왠걸 4~5년 전쯤인가 여기 피시앤칩스가 맛있다고 크랙이 소개를 해주는게 아닌가 간판도 <캡틴 모건>이었다.

 

영 헐렁한 성격의 두명의 남자사장은 다양한 상표의 생맥주를 파는 것에 자부심이 있어보였는데 요리는 피시앤칩스를 제외하면 맛이 없었지만 장소와 맥주판매의 특성상 외국인 손님만 들락거려 영어를 못하는 사장이 쩔쩔매는 걸 보는게 또 한 재미였다. 경영도 헐렁했다. 쉽게 공짜 맥주를 주곤했으니까. 나는 일이 끝나면 평일에 두번정도 들러 칼스버그 맥주를 다섯잔 정도 마시고는 책을 반권정도 읽고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가만히 맥주 마시고 책만 읽는 내가 어지간히 신경 쓰였는지 꼭 두번씩 말을 걸길래 "책 읽으러 오는 거니까 신경 안쓰시고 하시던 일 하시면 됩니다."하고 일러두었다. 평일엔 손님이 거의 없었다. 내가 7시쯤 들어와 12시 넘어 나갈때까지 나밖에 없었던 적도 종종 있었다. 언젠가 번역되지 않은 책을 읽고 있으려니 사장이 영어를 가르쳐주면 맥주를 공짜로 마시게 해준다고해서 잠깐 과외 아닌 과외도 했다. 물론 평온한 내 일상이 너무 아까워서 금방 관뒀지만.

 

또 언젠가 들렀더니 자기들이 이 가게를 운영하는 마지막 날이라며 함께 술을 마시자고 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면서 그들은, 둘이 같이 일본에 건너가서 요식업을 좀 더 배우고 다시 돌아와 동성로에 일식 가게를 차릴 계획을 갖고있다고 이야기 했다. 모건은 어쩌냐하니 이미 다른 사람에게 팔았단다. 아쉽지만 생맥주 파는 시스템은 안 바뀐다니. 나야 상관없을 일이었다.

 

그 다음주는 일이 있어 가질 못하고 다다음주에 가봤더니 전의 사장과는 다르게 영 멀끔하고 똑부러지게 생긴 사람이 사장이라며 정말 맛있는 피시앤칩스를 내놨다. 음식은 점점 진화해서 지금은 로데오 거리 음식하고는 격이다른 걸 내어놓고 있더라. 아무튼 건강하고 밝고 똑부러지는 새 사장님이 등장함으로서 모건은 활기차지고 손님이 넘쳐나게 되었으며 나는 더이상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맥주와 음식이 너무나 맛있고 또 그 나름의 활기찬 분위기를 느끼고자 할때는 방문할 만한 곳이기 때문에 지금도 배우자와 종종 주말에 방문하고는 한다. 2017년에는 LGBT 운동하는 친구들하고 참 많은 시간을 여기에서 보내면서 지낸거 같은데 회합이라 치고 회의를 하는. 그렇지만 종종 조용했던 그때가 그리울 때가 있다. 지금은 (구) 캡틴모건의 대체 가능한 술집을 찾아다니고 있다. 쟁이2는 문을 닫았고 꼬뮨은 너무 어둡고 의자가 불편하다. 오르간은 어디론가 옮겨버렸고 꽃밭은 물담배 피우긴 훌륭해도 책 읽으면 안된다. 삼덕동 133은 담배를 필 수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진보 개저씨들의 욕설이 불편하다. 언젠가 갔더니 "정말 마티니를 마실 줄 아는지"에 대해서 사장이 5번 정도 물어서 정말 화가났다. 제발 그러지말길 바이섹슈얼에 대한 모독이다.

 

아무튼지간에 바뀐 캡틴 모건의 경영은 매우 활발하고 역동적으로 굴러가고 있고 그곳은 파티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파트너 또는 친구와 방문한다면 맛있는 음식에 맛있는 맥주와 와인을 먹을 수 있으니 그런 시간을 가지길 바라는 사람은 들르길 바란다. 그리고 누군가 아무도 오지 않고 조명이 적당하며 와인과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펍을 알고 계시는 분은 저에게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2022.6.22. 찾았습니다.

대구 교동 Banter라는 드링크숍이고 노보텔 뒤쪽에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suee0715/222721234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