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말이 없었었지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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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저 매주 복권 사고 있는데 당첨되면 대구퀴퍼에 다 기부할 거예요.”

춤추는 기린 2018. 4. 2. 09:36

“저 매주 복권 사고 있는데 당첨되면 대구퀴퍼에 다 기부할 거예요.”

기사 링크 http://bridge.dothome.co.kr/697/


대구퀴어문화축제 활동가 기린을 만났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제9회 대구퀴어문화축제 본행사가 무사히 끝났다. 축제가 끝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부스를 정리 중인 대구퀴어문화축제 활동가 기린님을 만났다. 카메라를 들고 정신없이 사진과 영상을 찍고 행진하느라 녹초가 되었지만 기린님을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인사를 나누고 기린님과 함께 사무실로 이동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춤추는 기린입니다. 올해로 6년째 대구 퀴퍼를 같이 준비하고 있어요. 요즘은 그림일기도 그리고 간단한 영상 작업도 배우는 중입니다.


기린님의 그림일기를 잘 보고 있어요. 작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성소수자로서 그리고 또 퀴어 활동가로서 겪게 되는 불합리한 경험들을 이야기하고 나눌 창구가 필요했습니다. 스트레스를 잘 다뤄야만 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요. 그게 글이면 또 너무 진지하고. 그래서 가볍게 고민을 나누기 위해 아주 간단한 그림으로 단편적인 내용만을 공유해보면 어떨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했습니다.


제목이 ‘그런 일’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첫 화에서 행진을 하다가 할머니에게 등을 맞은 이야기가 나와요. 활동을 시작하고 세 번째 행진 때였는데 그 일로 활동에 대한 겁이 생겼어요. 물론 할머님이 내려친 손찌검이 아프진 않았죠. 그런데 덜컥 집에 가서 겁이 났어요. 다음엔 할아버지라면? 아니면 덩치 큰 성인 남성이라면? 그런 두려움들이요. 천둥벌거숭이처럼 얼굴을 다 까놓고 활동하던 시절에는 잃을 것이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어요. 지켜야 할 사람들도 있고 예전처럼은 자유로울 수가 없죠. 그런 식으로 무수하게 일어난 ‘그런 일’들이 저를 구성하기도 하고 바꾸기도 하고 때로는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요. 그림일기 속의 기린은 ‘그런 일’로 만들어진 인물입니다.



대구퀴어문화축제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서울에서도 하는데 지방에서 못할 게 뭐 있냐. 우리도 한번 도전해보자. 특히 대구가 다른 어떤 지역보다 보수적인 도시이기 때문에 여기서 반드시 초석을 쌓아야 한다. 그렇게 앞뒤 안 가리고 뛰어드시는 그런 지점들이 있었던 거 같아요. 첫 축제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것도 대구 시민단체들과 진보신당의 도움이 컸었어요.


기린님이 대구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게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2011년 제3회 축제 당시에 풍물패와 함께 길거리에서 춤을 췄는데 환경운동연대에서 일하시던 선배가 그걸 보고 저를 대구퀴어문화축제 배진교 위원장님에게 소개시켜주셨어요. 축제 때 연락처를 받고 헤어졌는데 바로 사고로 병원에 입원을 해서 연락이 두절됐어요. 그런데 우연히 영화를 보러 갔다가 다시 그 선배를 만났어요. 그림일기 속에 나오는 춤을 추는 인물들처럼 진짜로 춤을 추다가 목이 낚아채진 거죠. 일이 너무 많아서 지치면 아직도 그때 왜 춤췄을까 하고 후회해요. 인연이라는게 따로 있나봐요. 생각하면 아직도 얼떨떨해요.

기린님이 맡고 있는 업무는 무엇인가요?
저는 집행위원회에서 재정 관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만 여타 실무까지 겸합니다. 물품 제작에서 언론 취재, 영상 촬영, 홍보 등등. 가장 중요한 활동은 재정 관리와 트위터 계정 관리 두 가지입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 일이 정말 너무 많아요. 제 생각엔 한 50명 정도의 기획단이 해야 할 일들을 10명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구성원 전체가 6월이 되면 흔히 현생이라고 하는 게 없어요. 축제 시즌이 다가오면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제 원래 직업은 올 스톱입니다.


(중략)


기린님에게 대구라는 도시는 어떤 장소인가요?
나고 자라서 제가 계속 존재하는 곳이요. 인생의 거의 모든 시간을 대구 땅을 밟고 지냈죠. 그런데 이곳은 공교롭게도 성소수자 그런 거 싫다고 말하는 대선 후보의 지지율이 과반수를 가볍게 훌쩍 넘어가는 곳이기도 하고요. 모순되게 동성결혼을 가장 많이 지지하는 도시기도 하죠. 그런 땅에도 성소수자는 살아요. 아니 사실 우리는 어디에나 있어요. 내가 내 목소리를 내는 데 좀더 많은 용기와 힘이 필요한, 그런 제 삶의 공간이에요. 대구가 가지는 상징성은 분명 있어요. 가장 보수적인 곳이고, 그게 저희가 이곳에서 퀴어문화축제를 아득바득 여는 이유예요. 20대에는 대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별로 그렇진 않습니다. 어디에서도 저는 그냥 저로 있을 뿐이니까요.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저한테 주어진 업이라 느껴요.


어떻게 9년 동안 매년 축제를 열고 있나요?
이 이야기는 꼭 하고 싶은데 정의당 대구시당 중앙당에서 매번 윙바디 차량을 대여해줘요. 너무 감사합니다. 올해도 왔어요. 대형화면 출력이 가능한 차량이 있으면 자막을 넣을 수 있으니까 청각장애인들이 축제를 즐기는데 도움이 돼요. 대구지역 여러 단체들이 십시일반으로 뭐도 빌려주고 뭐도 빌려주고 그렇게 운영됩니다.

아웃팅은 올해도 역시 크게 고민되는 지점입니다. 2015년 제7회 축제 할 때 부스 신청 안내를 위해서 올려놓은 제 번호를 구글링해서 저희 부모님을 알아내고 집에 전화를 걸어 아웃팅 시킨 사건이 있었어요. 그림일기 ‘그런 일’ 3화에 나와 있어요. 가족이나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제가 활동을 그만 둘 때까지 따라다닐 거예요. 이건 성소수자 운동 중에서도 퀴어 운동에 뛰어든 제 업이겠지요. 그전에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길 바랍니다.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한 갈래이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저라는 인간의 서사를 풀어나가는 방식이기도 해요. 소수자로서의 저에게 따라붙는 차별과 고통을 이겨내고자 하는 투쟁의 일환이고요. 축제 당일에 개막 선언을 하고 나면 그전의 과정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웠어도 몸에 피가 돌아요. 이거 하나 하겠다고 이 고생을 하나 싶으면서도 그게 너무 좋으니까 그럴 만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퍼레이드가 끝나고 나면 꼭 대구 퀴퍼를 검색해서 후기들을 찾아보면서 또 1년 버티고 그렇게 살죠.

이걸로 제가 무슨 개인적인 활동의 성과를 얻고자 하거나 하다못해 마음의 뿌듯함을 느끼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아요. 실무는 제가 꾸리지만 이 축제는 제 것도 조직위원회의 것도 아니죠. 그건 여기 단 하루 대구에서 성소수자들의 탈출구이자 명절을 함께 누리고 즐겨야 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짜로 축제를 만드는 사람은 그 분들이니까요.


이번 축제에 알찬 행사들이 무척 많은데 특히 공들여서 준비하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으신가요? 또는 기대되는 행사가 있으신가요?
퀴어 토크쇼 부분이 제일 기대가 커요. 성소수자의 부모를 만나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가장 기대되고 아마 많은 분들이 이 만남을 기대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부모, 가족이라는 존재가 가장 어렵고도 복잡한 부분이니까. 그리고 다른 일자에 성별이분법 해체에 대해 논하는 토크쇼 있죠. 저도 6년이라는 시간동안 이 활동에 머물면서 업데이트 되지 못한 부분들, 놓치고 가는 부분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 토크쇼 통해서 퀴어를 문화로 풀어가는 방법들, 성별이분법을 넘는 방법들, 제가 미처 생각지 못한 여러 가지를 배우고 싶어요.

올해 처음으로 시도되는 공식 애프터파티는 대학동아리 공동 주최로 열리게 돼서 더 뜻깊어요. 원래 축제 끝나면 조직위들끼리 막걸리 마시면서 회포 푸는 게 전부였는데 올해는 아예 대규모 파티를 기획했어요. 컨셉을 정하는 것부터 실무 전반을 대구/경북지역 4개 성소수자 동아리에서 직접 준비했어요. 최근에 각 대학 퀴어 동아리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지역 성소수자 운동에 구심점이 되고 있어요. 정말 기쁘고 반가운 일입니다. 이번에 함께 애프터파티를 진행할 수 있어서 영광이고 앞으로도 다양한 지역의 퀴어 동아리들과 인연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후원 리워드 부분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디자인을 고심하고 사람들이 축제에서 무엇을, 어떤 유형의 것을 간직하길 바라는지 고민하고 컨셉에 맞도록 제작했습니다. 기꺼이 리워드 모델이 되어준 레즈비언 문화배급소 놀레의 수민님 백두님 그리고 계명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계네들의 이소님 그리고 촬영을 맡아준 김민수 작가님에게도 감사해요. 대구 지역 성소수자 인권단체 활동가분들이 직접 역동적이고 진취적으로 차별과 혐오의 벽을 향해서 방망이를 휘둘러 넘기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데 덕분에 잘 나온 것 같아요.

 

“누가 무슨 짓을 해도 이 축제는 열립니다. 막으려고 해도 소용없어요. 우리는 존재하고, 존재하고 있으니 지우려해도 지워지지 않아요.”

 

앞으로 대구퀴어문화축제에 바라는 지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우선 축제가 좀 건강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처음부터 견고하게 조직을 다시 쌓는 과정은 원하지 않더라도 결국 거쳐야 할 거예요. 외부적으로는 덩치가 좀더 커졌으면 좋겠어요. 양적으로 질적으로 둘 다. 저와 집행위의 역량이 어느 정도까지 될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6월 20일이 있는 주만큼은 내가 여기 있다고 소리치고 외치는 그런 날이 됐으면 좋겠어요. 우리 목소리가 더 커지고 무시할 수 없게 되는 거요.

토크쇼에도 포함된 부분이기도 한데 대구퀴어문화축제가 문화적으로도도 좀더 풍성한 콘텐츠들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퀴어 문화라는게 뭘까 그런 생각을 잊지 말았으면 해요. 우리가 우리이기에 가질 수 있는 지점들을 짚고 넘어 가는 게 중요하다고 느끼고 관성적으로 퍼레이드 하고 부스하고 그런 일들만 반복한다고 해서 채워지는 부분은 아니라고 봐요. 다양한 서사를 담으려면 축제가 견고하면서도 유연할 필요가 있어요. 예술가, 콘텐츠 제작자들, 퀴어 활동가 그리고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일원들을 서로 잇고 연결하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할 거예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하세요.
위원장님 좀 쉬셨으면 좋겠고 끼니 좀 거르지 마세요. 축제만 다가오면 나뭇가지처럼 바싹 말라가는 게 너무 안쓰러워요. 그리고 우리 집행위원 동지들도 압박감을 잘 다룰 줄 알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부터 건강해야 해요. 3년이 고비인거 같아요. 이걸 한다고 해서 갑자기 모든 차별과 혐오가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자기가 가진 고민들을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 중요해요. 스트레스를 같이 다룰 수 있고 양지로 끌어낼 수 있으면 많은 부분들이 해소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누가 무슨 짓을 해도 이 축제는 열립니다. 막으려고 해도 소용없어요. 우리는 존재하고, 존재하고 있으니 지우려해도 지워지지 않아요. 지금 내가 고립되어 있다고 느낄지 몰라도 우리는 분명 연결돼있고 서로의 용기가 될 겁니다. 축제에 참가해주신 분들, 너무너무 감사하고 축제를 만들어 주신 후원자분들 정말 말로 다할 수 없이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또 뵙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촬영·편집·인터뷰 굴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