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말이 없었었지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 처럼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 순심중학교 학생들과의 대화 본문

보도자료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 순심중학교 학생들과의 대화

춤추는 기린 2023. 5. 9. 10:48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인디피크닉 

순심중학교 학생들과의 대화

2023. 5. 8. (월) 순심중학교 시청각실에서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가 2023년 5월 17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계기는 J교사와의 대화다. 

 나와 J교사는 2022년에 '무주산골영화제'와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말이야 바른 말이지>를 두 번 감상했다. 무주산골영화제에서는 GV도 함께 보았다. 워낙 매년 여기저기 영화제를 찾아다니는지라 접하는 영화도 다양할 수 밖에 없는데 우스운건 우리가 이 영화의 제목을 '마리아' 바른 말이지로 오해하고 종교 영화인가? 하고 처음 예매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스크린에서 흘러나온 것은 너무나 유쾌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현재 이슈를 날카롭게 끄집어내는 익숙하고 또 낯선 인물들이었다. 

 

 J교사는 이 영화를 두 번 접한 후 자신의 자율활동 수업에 이 영화를 상영하고 싶어했다. 현대 사회의 이슈들에 섞여 지내면서도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어떻게 흘려보내야하는지 잘 모른채 유투브나 인터넷 속 혼란스러운 정보들에 무방비한 중학생들이 '말바말'을 접하고 나면 아마 현대사회의 갈등을 대하는 시야가 달라질텐데 하고 내내 온갖 OTT사이트를 뒤지며 1년을 아쉬워했다. 

 

 '이 사람 진심인가? 이걸 학교에서 틀겠다고?' 세대, 지역, 성별, 환경 학교에서 다루기엔 너무 무거운 주제들 아닌가. 하지만 J교사는 학교를 설득해 자율활동시간에 영화상영을 하겠다는 의지를 관철해냈고 교사가 하겠다는데 나도 방관하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우리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전쟁통에서도 가나다라를 가르친 나라이다.) 나는 얼른 인별그램을 통해 윤성호 감독님께 연락을 드렸다. 감독님께서는 감사하게도 우리를 서울독립영화제에 연결해주셨고 서독제에서도 더욱 감사하게도 우리의 제안을 반겨주셨다.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 일어날 엄청난 사건의 서막일 뿐이었다

 

 처음엔 오픈소스나 DVD를 활용하여 학생들에게 영화를 감상하게 한 후 시청소감 발표나 에피소드에 대한 모의토론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너무나 감사하고 기대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J교사는 시청각실에서 영화상영이 결정된 후 활동지와 토론 주제를 준비 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이윽고 기대하지 않았던 소식이 우리에게 도착한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속 단편 '진정성 실전편' 최하나 감독님께서 학교방문의사를 전달해준 것이다.

 게다가 얼마 후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의 박동호 감독님까지 함께 참석하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정말? 학교에 감독님들께서 직접 오신다고?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다.

 

 사실 순심중학교가 위치한 칠곡군 왜관읍은 영화접근성이 매우 좋지 않은 지역이다. 가장 가까운 소규모 영화 컨텐츠 제공 공간인 칠곡 '호이 영화관'은 읍내에서 차량으로 이동해야 하는 거리에 있으며 대중교통도 잘 마련되어있지 않다. 상영되는 영화도 어벤져스 시리즈,  한산 등 멀티플렉스 자본 영화만 상영된다. 학생들은 왜관에서 생활하며 성인이 될 때까지 혹은 그 이후로도 영화관이나 영화제를 찾아가보지 못한다. 그 중에서도 인디필름을 만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이 영화를 상영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가치있는 일이었는데 심지어 감독님께서 직접 방문하셔서 학생들과의 GV를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설명이 될까.

 

날짜는 빠르게 다가왔다 드디어 상영일이다

 

 시청각실에 모인 학생들은 모두 기대에 차있었다(학생들과 교사들의 얼굴은 학생 인권을 위해 임의로 블러처리 하였습니다). 저마다 와글와글 친구들과 떠들며 지금 보게될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감독님들은 어떤 분일지 짐작하기에 바빴다. 활동지를 나누어주는 교사분들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지어졌다. 이윽고 우리들만의 작은 상영관의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 시작과 함께 학생들은 무섭게 집중하기 시작했다(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임의 모자이크 처리 하였습니다)

 

최하나 감독님의 '진정성 실전편' 상영 중에는 여기저기서 웃음과 탄식이 흘렀다

 

상영에는 순심중학교 학생 뿐 아니라 순심고 교사분들과 영화를 진로로 꿈꾸고 있는 순심고등학교 학생 몇몇도 참여했다

 

 상영 내내 학생들은 영화의 각 에피소드에 잘 집중하며 성숙한 영화관람 태도를 배웠다. 그러나 중간중간 '빵 터지고' 같이 '탄식하고' 때로는 '분노하며' 이 영화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J교사는 이 경험이 학생들에게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줌과 동시에 친구들과 함께 울고 웃는 즐거운 관람으로 기억되길 바랐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60분의 러닝타임이 짧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영화를 감상한 후 학생들이 활동지에 각각의 소감을 담고있다

 

 영화를 감상한 후 학생들에게 활동지를 나누어주었다. 활동지에는 영화 속 인물이 되어 직접 '진정성을 실전' 해보기도 하고 인물들의 정체를 짐작해보는 등 다양한 내용들이 차곡차곡 채워졌다. 평소 글쓰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아이들이지만 이날만큼은 서로 활동지를 돌려보기도하고 토론도 하며 자율활동 시간을 즐겼다.

 

 그럼 학생들이 어떤 감상을 남겼는지 잠시 보고 가보자.

자신이 하리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요?: 여자친구집, 남자네 집에 가면 알레르기 때문에 퇴출 당할 것 같다.
되돌리고 싶은 일은?: 받아쓰기 할 때 컨닝페이퍼를 본 것,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감상: 첫번째 이야긴 내가 잘 겪어보진 못한 이야기였지만 나머진 어디선가 들어본 주제였다. 보는데 약간의 스트레스가 있었지만 그래도 유쾌하게 볼 수 있었다.
감상: 정말 많은 생각이 드는 영화였습니다. 여러 주제들도 흥미로웠고 배우분들의 연기력도 좋아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1시간 정도지만 그 후로도 계속 생각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활동지 감상문 중 일부를 발췌해보았다. 컨닝페이퍼를 본 일을 후회하며 반성하는 모습이 학생답고 귀엽다. 그 외에도 다양하고 기발한 활동지 답변이 많았으나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과감히 생략하고자 한다.

 

이윽고 박동훈 감독님과 최하나 감독님의 학생들과의 대화가 시작됐다

 학생들은 서로 질문하고 싶어 안달이 나있었다. "강아지가 연기를 잘하던데 원래 연기를 배운 강아지인가요?", "감독님께서 추천하시는 다른 영화는 무엇인가요?", "영화를 만드는 이외의 시간은 무엇을 하며 보내시나요?" (대담은 J교사의 기억에 의존하여 일부 각색하였으며 여러 질문이 더 있었으나 영화 내용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어 스포일러를 방지 하기 위해 질문을 필터링 하였습니다.) 

 

 강아지는 최하나 감독님께서 직접 키우고 계시는 반려견 '두목'이라고 한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 병원에 가는 줄 알고 움츠러 드는 편인데 이날은 촬영장에 도착해 많은 장난감과 간식에 신이나 연기가 잘 나왔다고. 영화 이외의 시간에 무엇을 하시냐는 질문에는 주로 축구를 보며 지낸다는 답변을 내놓으셨다. 그때부터 아이들이 들뜨기 시작했다. 중학생하면 무엇인가. 바로 축구, 공만 던져주면 어디서든 시작되는 그들의 운동회다. 최하나 감독님이 축구팀 FC바르셀로나의 팬이라는 말을 듣자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FC바르셀로나는 어디에서나 그렇듯 순심중학교 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팀이다. 

 

 추천 영화로는 최하나 감독님께서 <존 윅>, <쥬라기공원1>, <슬램덩크>를 추천해주셨다. 슬램덩크를 정말 좋아하시는 듯 3번 관람하셨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나와 J교사도 슬램덩크의 열렬한 팬이다)

 

GV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던 중 날카로운 질문이 학생들 사이에서 나왔다. 

 "모든 에피소드에서 관객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인물이 하나 이상씩 등장합니다. 이것은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인가요?" 

 박동훈 감독님께서 질문을 받아주셨다. 

 "영화는 인물들 간의 갈등을 통해 '이야기'를 구성하고 감독이 말하고싶은 주제를 스크린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이에요. 갈등은 그렇게 쓰여지는 것이며 영화란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왜, 어떻게 영화를 만드는지에 대한 통찰력있는 질문과 답변이었다. 사실 이런 질문이 중학생에게서 나올수 있을까 기대하지 않았던 바였기 때문에 이 질문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영화를 좋아하던 나조차 스토리에는 당연히 갈등이 있는 것이기에 귀기울이지 않았던 부분이 학생들의 눈에는 꿰뚫어보이는가보다. 

 

GV가 끝난 후 감독님과의 단체사진

 

 GV를 마치며 J교사는 영화를 진로로 꿈꾸고 있는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는지 박동훈 감독님께 질문을 던졌다. 박동훈 감독님은 학생들에게 추천해주는 영화에 대해 <E.T.>를 꼽으시며 스티븐 스필버그의 최근 작품 속 한 시퀀스의 비유를 통해 당부의 말을 남겼다. 

 "그 영화 속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어린시절 경험이 담겨 있습니다. 감독은 영화 속에서 주인공을 통해 어린시절 부모님이 자신 앞에서 다투는 걸 보면서 그것을 영화의 한 장면으로 담는 상상을 합니다. 그 정도로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에 몰입할 수 있다면 영화일을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박동훈 감독님께서 얼마나 영화를 사랑하고 몰두 하시는지 느껴졌다. 부디 이 조언이 영화인의 길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가슴에 깊이 담겼으면 좋겠다.

 

J교사를 필두로 아이들이 복도에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있다

 

 귀한 시간인만큼 학생들은 마지막까지 놓치고 싶지 않아했다. 감독님들께서도 이런 학생들의 마음을 잘 아시는지 감사하게도 모든 학생들에게, 최하나 감독님은 교무실에서 그리고 박동훈 감독님은 복도에서 꼼꼼하게 사인을 해주시고 사진도 같이 찍어주셨다. 오늘은 그야말로 학생들과 교사들에게는 인디필름 속으로 떠나는 작은 '피크닉'이었다.

 

모든 활동을 마친 후 '진정성 실전편' 감독인 최하나 감독님과의 한 컷

 지난 영화제 상영 이후 새롭게 개봉하는 <말이야 바른 말이지>는 영화제에서 상영된 신들에서 몇가지 약간의 수정이 있으니 나와 같이 미리 본 관객도 다시 한번 더 봐도 좋겠다. 

 

+ 덧붙여

나도 슬쩍 사인을 받았다 평생의 가보로 간직할 예정이다

 오늘의 행운과 같은 이 아름다운 인디 피크닉이 단지 순심중학교에서만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순심중학교 외에도 아직 영화 접근성이 좋지 않거나 인디필름 그리고 좋은 영화를 접할 기회가 부족한 학교들이 많이 있다. 이 기회를 통해 곧 이미 이 사회의 일원이자 앞으로도 구성원이 될 학생들에게 '피크닉'이 닿을 기회가 많아진다면 기쁘겠다. 

 

 마지막으로 어려운 결정을 해주시고 협조 해주신 서울독립영화제와 순심중학교에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싶다. 이 계기를 통해 학생들이 영화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더 나아가 세상을 넓게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이 되었길 진심으로 바란다. 서울독립영화제를 연결해주신 윤성호 감독님, 인디피크닉을 기획하시고 준비해주신 서울독립영화제 홍보팀장님과 팀원 여러분들, 학교를 직접 방문해주신 최하나 감독님과 박동훈 감독님, 상영회를 준비 해주신 순심중학교 교사 여러분들과 학생들 이하 이번 상영회를 위해 노력해주신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