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말이 없었었지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 처럼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시민활동 기록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 포스트잇 총대 인터뷰 발제> 본문

보도자료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시민활동 기록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 포스트잇 총대 인터뷰 발제>

춤추는 기린 2018. 4. 2. 09:59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198일간의 기록과 기억’ 공유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71124_0000157868&cID=10801&pID=10800

 

 


시민 활동 기록 지역별 총대인터뷰

 

 

 

 

 


 

추모공간 운영·관리자 총대인터뷰 개요

대상 : 서울 등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추모공간을 운영관리 후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 추모 포스트잇을 전달한 총대’ 10

내용 : 추모포스트잇을 모았을 당시의 현장 상황 및 과정, 심경 등

방법 : 대면, 문자, SNS, 전화, 이메일 등

시기 : ’16.8.1~11.25



강남 여성살해사건 발생 후, 18일 강남역 10번출구에는 포스트잇 한 장이 붙었다. 한 장의 포스트잇은 10번 출구 아케이드를 뒤덮다 따라 붙은 벽으로 이어졌고 그 물결은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전국에서 재단에 모인 포스트잇은 총 35,350. 이 커다란 숫자 뒤에는 포스트잇을 지켜낸 이들, ‘총대들이 있었다.

총대, 포스트잇을 붙이게끔 책임을 지고 장소를 만들고 철수까지 도맡은 사람들을 칭하는 말이다. “총대를 메다라는 말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서울의 경우 시작을 한 사람들은 없어 총대는 없다라고 말하지만, 이 포스트잇을 밤을 새고 지켜낸 사람들이 총 8명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 2명이 철수 행정 처리를 맡아 철수 총대라고 불리다 강남역 총대로 자리잡았다.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는 강남역까지 가지 못하지만, 마음을 모으기 위해 포스트잇을 붙이게끔 처음부터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서울 이외 지역에서 재단에 포스트잇을 전달한 총대는 총 10명이다. 부산 서면, 대구 중앙로역, 대구 계명대, 광주 문화전당역, 대전 시청역, 부천 부천역, 울산 디자인거리, 청주 충북대, 전주 중앙오거리, 전주 전북대에서 활동한 총대들이다. 재단에 포스트잇을 전달한 총대 이외에도 많은 총대들이 있었다. 지역 내 대학 등 여러 곳에서 포스트잇이 붙여졌고, 수원 등 다른 도시에서도 포스트잇이 모아졌다. 여기로 TFT에서는 재단에 포스트잇을 전달한 총대들과 문자, 전화, 이메일, SNS, 대면 방식을 통해 포스트잇을 모았을 당시의 현장 상황과 총대들의 생각에 대해 질문을 던졌고 8~11월 사이 관련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 부산 서면 총대는 연락이 닿지 않아 제외.


 

인터뷰 내용 및 결과



1. 추모 포스트잇의 시작


- 대구중앙로역총대


우선은 메갈리아의 탄생과 더불어 여성혐오범죄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긴 것에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저는 메갈리아의 회원은 아니었지만 리벤지포르노 대응팀의 트위터 등을 통하여 경찰과 시민사회에 여성범죄에 대하여 얼마나 무기력하게 대응하는지를 지켜보고 있었고 이것이 폭발하게 된 사건이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해결해야한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 와중에 제가 속한 지역사회에서도 서울과 동일한 운동의 바람이 시작되었고 역시나 행정기관에서는 몹시 비협조적이었습니다. (이하 중구청이라 칭함) 중구청에서는 당초 좀더 규모가 큰 반월당역 출구에 포스트잇을 게시하는 허가하지 않았고 중앙로역으로 옮겨서도 주말 철거를 예고했습니다. 여성들의 분노와 절망 그리고 그로부터 피어난 연대를 흔적도 없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관할 수 없었고 이 포스트잇 추모행사를 시작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봉사자를 모집하게 함께 이를 수거하여 영구보존할 수 있는 곳으로 이송시키고 싶었습니다. 넷페미들간의 절실한 연대의지와 서로에 대한 응원, 용기가 필요했고 그 자리에는 생각보다 많은 여성분들이 나와주셨습니다.”



2. 추모 공간의 운영


- 대구중앙로역총대


대구 추모공간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에서 추모 행사를 지방으로 확대하자는 여론이 모여 형성되었습니다. 게시판을 통하여 댓글과 투표기능을 사용하여 모든 진행사항 전반을 다수결로 결정하였고 자원봉사자의 개인신상 보호를 위하여 어떠한 개인적연락처 수집없이 댓글로만 소통하고 공지하였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사람들끼리 불침번을 서면서 운영했습니다. 10~30대 여성이 주류를 이루었고 드물게 20대 남성과 40대 여성이 보였습니다. 하루 평균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다녀갔고 포스트잇의 수로 계산해 볼 때 하루 약 100여명정도가 포스트잇을 게시했습니다. 포스트잇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세심히 들여다보거나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 외의 남성구성원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새벽녘에 자전거를 타고와 추모현장을 훼손하고 간 사람은 20, 30, 40대 남성이었습니다. 수거봉사활동 도중 봉사자들에게 욕을 하고 간 사람은 50대 남성이었으며 봉사자들의 사진을 찍어 일간베스트에 무단게시한 사람은 20대 남성이었습니다.”



3. 철거, 이동


대구중앙로역총대


철수 당시 생각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주어서 놀랐습니다. 사실 개인적인 연락을 서로 하지 않아던지라 얼마나 올지 미지수였는데 기획했던 수보다 두배의 사람들이 도착해서 수거작업이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습니다. 그리고 대구에서는 수거작업이 끝난 후 봉사자들을 향한 혐오범죄가 발생했습니다.”



4. 추모공간 운영, 그 이후


아쉬움


- 청주충북대총대


철저히 준비를 해서 했어야 하는데 조급한 마음으로 준비하였고 준비하며 부족한 점이 많았던 터라 좀 더 좋은 추모 공간을 조성하지 못하여 아쉽고 와주신 시민 분들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특히 중간에 비가 와서 포스트잇 일부가 젖어 글씨가 번지고 최악의 경우 글씨가 녹아 사라져 버리는 경우까지 벌어졌을 때는 포스트잇을 남겨주신 시민 분들의 마음을 제가 지워버린 것 같아서 너무도 죄송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강남역 살인사건을 안타까워하고 마음아파하시고 계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행하면서 버겁고 힘들기도 했지만 많은 분들께서 수고한다라고 말씀을 해주셔서 참 뿌듯하고 기뻤습니다. 하지 않았으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혼자 진행한 추모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여 만들어간 추모 공간임을 다시 명시해 두고 싶습니다. 추모에 참여해 주신 여러분, 마음으로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 광주문화광장역총대


보통 무언가를 계획하고 직접 준비하고 끝났을 때 해냈다’, ‘뿌듯하다라는 기분이 들지만 이번엔 계속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에겐 살면서 제일 큰 용기를 낸 일이였지만 해냈다라는 결과를 얻기엔 아직 관심이 너무 적은 것 같아 슬펐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자발적인 전국적 참여가 일어났고 서울시 여성 가족재단의 도움으로 추모가 잘 보관됨으로써 해내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얼굴을 가리다


- 강남역 봉사단총대


봉사단 중 2명도 정신과에 다녔을 정도로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에 걸렸다. 집에 갈 때 남자들이 따라왔다. 일하던 가게까지 그들이 왔고, 가게 문에 침을 뱉고 갔다. 신상을 다 알아버려 가게도 문을 닫고 집도 이사를 갔다.”

 

- 청주 충북대 총대


추모 공간을 관리하며 종종 들었던 말이 있었습니다. ‘저렇게 할 필요까지 있나?’, ‘저게 여성혐오 때문이라고? 말도 진짜 말도 안 되지 않아?’, ‘진짜 저런 거 하는 거 이해가 안가.’ 저희에게 직접 말하시는 분들은 다행히 없었지만, 종종 추모 공간을 지나가다가 예시로 든 것과 같은 비난조를 툭 던지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내 사진이 인터넷 어딘 가에 올라와 조롱을 당하고 있지 않을까하며 추모 공간에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분들을 보며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저는 이런 것 상황들 자체가 여성 혐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충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에서 목소리를 내며 추모를 하는 게 과연 이상한 일일까요? 오히려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게, 소리를 낼 수 없게 억압하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요? 그래서 화가 났고 두려웠지만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들로 포스트잇 추모를 시작한 것이 잘못되지 않았고 옳은 일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 부천부천역총대


제가 사는 지역에서 했던 행동이다 보니, 누군가 지나가다가 나를 알아보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사실 있었어요. 위에 이야기했듯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된 해석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기득권층의 합의에 반하는 정치적 스탠스를 취하는 사람들은 그 성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게 쉽지 않거든요. 촛불집회에 마스크를 쓰고 참가하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요.”

 

다른 눈으로 바라보다


- 광주 총대


삶의 질은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는데 생각하는 수준이 예전 그대로라면 그것이 고정관념이 되고 편견을 갖게 되고 더 나아가 차별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글자 그대로만 읽지 말고 일어났는지에 관심을 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얘기를 하면서 주위에서 머리아프게 그렇게 까지 생각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머리아프다고 관심을 안 가지면 정말 이 사회가 더 머리아파질 것 같습니다.”


- 전주 전북대 총대


이번 활동을 하면서 남성들이 여성들의 일상적 공포감에 대해 공감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런걸 어떻게 설득하면 좋을까 고민이 많다.” 포스트 잇 안에 하고 싶은 말들이 다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너는 나였다, 너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다


- 울산삼산디자인거리 총대


여성에 대한 여혐발언이네 코르셋 조이는 발언에 숨김없이 반박하고 수정하는 것에 좀 더 목소리가 켜졌다. 덕분에 예민하고 불편한 사람이 되어버렸죠. 주변에 니랑 티비 못보겠다부터 애가 왜 이렇게 변했냐까지. 근데 그 문제는 예민하게 굴어야하는게 맞고 불편하게 만드는 게 맞다고 봐요. 사람들이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여혐을 발견하고 불편하게 느껴야 하니까, 그것부터 시작하면 그럼 언젠가 바르게 잡을 수 있겠죠. 그리고 울산에도 페미니즘 강의가 열린다고 해서 시간만 맞으면 갈 예정이다.”


- 대전시청역총대


평소 여성인권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페미니즘을 알지 못했다면 강남역 살인사건이 왜 여성혐오 범죄인지 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추모를 진행하기 전과 후에 별 다른 차이는 없다. 추모 전부터 지금까지 나는 항상 여권을 위해 주변을 설득하고 공부한다. 공부는 서적을 읽거나 교양 전공시간에 여성학을 들으며 인터넷 글을 관심있게 보고 강연을 듣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


- 대구계명대총대


현재 여성학 관련 단체에 인턴을 지원하였고 학위 논문 또한 2016년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와 여성할당제를 가지고 여성학적 관점으로 썼습니다. 페미니즘은 이제 정말 거스를 수 없는 시류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아리 담당 교수님과 여성학과 교수님도 오셔서 저희에게 응원의 한마디를 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 전주오거리총대


전주에도 페미니즘 책읽기 동호회가 있더라고요. 있는지 몰랐는데 그분들이 연락 주셔서, 그분들도 전북대에서 진행한다고. 그러면 같이 하자고 해서 했는데 동호회에 관심 갖고 나가게 되고. 관심을 끊임없이 갖게 됐다. 모르다가 이런 콘텐츠를 너무 많이 알게 됐다. 접할 수 있는 페미니즘 콘텐츠가 너무 없었다. 내가 모르고 당연히 받아들인 것도 이게 여성혐오에서 기반한 것이라는게 쏟아져 나오고, 그 전에는 관심 있어야 찾아봤는데, 쉽게 접하면서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안되는거였구나 생각이 들어서 용기를 내게 됐다.”

 

- 대구중앙로역총대


이번 사건으로 제가 달리진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의 용기였고 연대였으며 힘이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관련링크: http://www.seoulwomen.or.kr/c3/sub3_1_view.jsp?regNo=148007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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