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말이 없었었지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 처럼

결함 본문

결함

춤추는 기린 2018. 9. 4. 15:50

그것은 어떤 때의 숲처럼 아주 빼곡하고 여유라곤 없었다. 열기와 습도를 붙잡아 놓은 우림처럼 나는 그것이 내 손에 닿는 것 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다. 검은색 악몽이 눈앞에서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를 반복하는 동안 내 육신이 세차게 망가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런 종류의 일들은 왜인지 한번으로는 끝나지기 않았다. 내 껍질의 어딘가 결함이 있는 부분으로 들이쳐서 산산조각으로 부서뜨리고 나서도 여전히 나를 갉아 먹었다. '상태'가 지속된다는 것 자체가 바로 폭력이었다. 딛고 서야하는 땅이 낯설게만 느껴지고 남들에게는 충분할터인 이 지구의 중력이 내게만 항상 모자란 것 처럼 보였다. 나는 필사적으로 땅에다 발을 대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때로는 줄도 묶어 보았지만 속절없이 떠오르는 몸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해서 두번, 존재하지 않는 절벽으로 육신을 던져넣었다. 다그닥다그닥 냄비 뚜껑의 소리가 알람이 되어 잠을 깰 때 당신이 느끼는 당혹감, 어처구니 없음, 황당함 서둘러 불을 끄고 망연자실해 있는 감각, 모든 것이 단 한군데만을 가르키고 있었다. 물을 끓인 적이 없는데. 나는 문을 걸어잠그고 숨을 참고 손가락으로 부터 달아나기 위해 소리를 죽여야만 했다. 


아주 짧고 옅은 잠을 자고 깨어나면 여전히 나는 숨어있었고 다시 옅은 잠에 들었다. 그렇게 해서 시간이 흐르는 것으로부터 숨어지냈다. 아주 천천히 다리를 뻗으면 햇빛 아래의 내가 다 드러났고 절망은 반가운 친구처럼 나를 맞이해주었다. 많은 일들은 그늘 속에서 그렇지 못한다면 목숨을 내어놓고 공포의 아래에서 실행해야만 했다. 도망치는 사람은 정착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정착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다. 나는 나만이 이 세상의 이방인인 것처럼 행려자가 되어 죽음을 찾아 헤매었다. 


결함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나. 그들은 나의 아주 약간 찢어진 표피를 어떻게 알아보았나. 그것을 양손으로 찢어버릴 결심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 그런 용기는 그런 폭력은 그런. 어디서 왔는가. 고통에게 이름을 지어주면 모든 것은 끝이 난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결심이 들 수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