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말이 없었었지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 처럼

김기홍 위원장에 대한 추모를 거두며 본문

김기홍 위원장에 대한 추모를 거두며

춤추는 기린 2023. 11. 1. 11:36

이 글은 다음의 포스트를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https://m.blog.naver.com/yurihanlovesyou/223251135476

 

성폭력, 어떻게 괜찮아질까? 잘 모르는 사람들의 대화

*안녕하세요! 이 인터뷰는 지난 2021년에 자살한 트랜스젠더 정치인 김기홍 씨의 성폭력 가해 사실을 다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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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갖추기에 앞서 나와 김기홍 위원장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해야할 것 같습니다. 
 
저는 지난 10여년간 대구퀴어문화축제에서 일을 해왔으며 전국퀴어문화축제연대에서 활동하기도 하였고 대구 녹색당의 당원이기도 하였으며 강원퀴어캠프를 조직하는 등 성소수자 권리운동을 이어왔습니다. 지금은 잠시 쉬는 중입니다만 김기홍 위원장과는 제주퀴어문화축제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접하며 전국퀴어문화축제연대에서 만났고 몇차례 회의와 사적 연락을 통해 가벼운 친분이 있는 사이입니다. 그래서 호칭은 김기홍 위원장, 기홍위원장으로 불렀습니다. 선거가 끝나고부터 얼마 후 김기홍 위원장이 한참동안 연락이 되지 않고 자리에 모습을 보이는 일이 없어 두어번 카톡을 보내보았으나 상태메시지에 당분간 쉬겠다는 것 이외에 여타 연락이 닿지 않아 그의 부고를 접했을때 몹시 당황했습니다. 제가 김기홍 위원장을 추모하는 글을 몇차례 게시한 이유는 이러한 맥락의 친분이었습니다.
 
 
 
김기홍 위원장의 부고를 대구퀴어문화축제 배진교 위원장으로부터 전달받고 몇달동안은 굉장히 우울증이 심했다. 반트랜스젠더 진영에서 그가 소라넷 유저였다는 것을 언급하며 그의 존재와 사망을 조롱할때 찾아오는 무기력감과 고통이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가 과오를 저질렀다고 해도 나 개인이, 그리고 한 명의 활동가인 내가 동지였던 그를 추모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또 동시에 내 추모는 어떤 영향력도 갖지 못한다고 생각했던것 같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나는 마음 편하게 그를 추모하고 싶었다. 우리와 같이 집회현장에서 마주치고 저 멀리 제주도에서 우리와 같은 결의 축제를 열었던 귀한 친구였기 때문에 '추모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여기고 싶었을지 모른다. 영화 아수라의 대사를 인용하며 그의 죽음을 조롱하는 글을 보았을때는 진심으로 화가 나기까지 했다. '아니 기홍이가 왜? 소라넷이 성범죄 소굴이라는 것이 알려지기 전 그곳을 단순 야설 사이트로 알고 있었을 수도 있잖아. 한 사람의 죽음이, 그가 공인이라는 이유로 왜 그렇게까지 조롱을 받아야해?' 그 사람과는 직접적으로 싸우기도 했다.
 
얼마 후 김기홍 위원장에 대한 성폭력 공론화 포스팅이 트위터에 링크로 게재되었고 나는 그 글을 접했다. 그리고 긴 시간 침묵했다. 아니다. 거짓말이다. 나는 침묵하지 않았다. 공적인 자리에서 그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기도 하고 블로그 포스팅를 통해 사적인 감정을 적어 게시하기도 했다. 그의 죽음을 비극으로 인용하며 정치적 자리에 나설때(주로 트랜스젠더들을 포함한 성소수자들의 삶의 고통에 대해 서술해야할 때) 나의 마음 한켠에서는 내가 가해자의 동조자이며 방관자임을 인정해야함에, 성폭력 고발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그의 가해에 대한 침묵을 정치적 의도로 지켜야만하는지 고민해야 함에, 그 '사실'들은 계속해서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링크의 글에서도 등장하지만 그래, 김기홍 위원장은 내게 퍽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언제나 예의바른 태도와 상냥한 언사로 나를 대했고 나와 마주치는 공간에서도 소위 '빻은 발언'은 전혀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과거 그가 교편을 잡고 있었기에 이 판에 어울리지 않게 제법 샌님같고 고루한 면이 있다고까지 생각했다. 최소한 내 앞에서 그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이었으며 그렇기에 그가 가진 언어, 행동 등이 내게는 정치적으로 설득력 있게 들렸고 그의 행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했다. 그에 대한 실망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 나는 이미 알고있다. 성폭력 가해자는 자신보다 약하다고 판단한 사람과 강하다고 판단한 사람 앞에서 태도가 완전히 뒤바뀐다는 것을. 이러한 고발에 있어서 무고가 있을 수 없음을 성폭력 생존자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있다. 특히 망자에 대한 고발은 그 고발인이 사과도 합의도 얻을 수 없는 우물에 돌을 던지듯 허무한 것이기 때문이 더더욱 그러하다는 것도. 지금 피해자의 심정에 깊이 공감하며 하나하나의 추모글들이 가슴을 파고들어 고통 받았을 그 바늘에 나또한 한 갈래를 보탠 것에 뒤늦게 사죄드린다. 김기홍 위원장이 그러한 폭력을 휘두를 수 있었음은, 다만 그가 개인적으로 이상하거나 범죄자적 성향을 가졌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러니까 나와 같은 그의 동지들이 그에게 권력을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내어줌 뿐 아니라 그가 공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지지하고 응원하고 연대했으며 그를 적극적으로 돕기까지 했다. 이 사실이 피해자가 피해를 호소하고 가해자를 고발하기까지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도 사죄드리고 싶다.
 
박원순 시장이 사망했을 당시 나는 그를 추모하지 않았다. 나는 박원순 시장에게 빚이 있는 사람이었다. 개인적인 일이라 자세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내가 추억하는 박원순 시장은 여성주의자였으며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로인해 고통 받는 피해자가 존재하는 이상 그를 추모할 수는 없었다. 그게 내가 가진 내가 겪어온 피해에 대한 공감의 요구였으며 마찬가지로 타인을 향해 뻗는 내 공감과 상상력이었으니까. 
 
그것이 그에 대한 추모를 공적으로 '취소'할 사유가 되는가. 이제 나는 대답한다 당연히 그렇다고. 김기홍 위원장에 대한 포스팅은 비공개로 바꾸었다. (죄책감을 잊지 않기 위해 삭제는 하지 않을 예정이다.) 나는 그가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피해회복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공적인 책임도 사적인 책임도 회피하지 않고 짊어지는 '공동체적 성폭력 회복'의 사례가 되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결국 유서에서 조차 이를 거부했으며 우리의 공동체가 성폭력에 맞서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다시한번 길없는 파도 위에 놓여지게 되었음에 분노한다. 
 
추모를 거두며 동시에 그의 죽음에 대해 더이상 추모하지 않으려 한다. 추모는 죽은 이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산 이를 위한 것이라고들 한다. 죽은 이를 마음 속에서 잘 보내기 위함이라고. 나는 이제 그를 잘 보내길 원치 않는다. 가해 사실에 대한 방관자였고 동조자였음을 인정하고 양심의 가책을 짊어지고 그의 죽음과 또 그의 가해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행동들을 해나가고자 노력 하겠다. 피해자가 어떤 방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회복되길 바라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당신도 역시 나의 동지이기에 당신이 고통 속에 있을 때 그래서 김기홍을 검색할 때 내 추모글이 당신의 마음을 할퀴지 못하도록 모든 포스팅과 글은 삭제하고자 하며 내가 속해있는 성소수자 커뮤니티 그리고 활동가 단체들에서도 김기홍 위원장에 대한 감상적인 추모나 회상이 언급되지 않도록 설득하고자 한다.

어쩌면 너무 늦었을지도 모를 지금에 다시한번 사과의 말씀을 전하며 당신이 안녕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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